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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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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수민 댓글 0건 조회 504회 작성일 20-10-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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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기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자

아내는 중의사가 되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10년동안 변호사를 써도 외국인 의료 허가를 못받았고, 병원장의 보증으로 심장병원에서 어렵게 일을 했습니다. 월세 200불짜리 단칸방 집에 살았지만, 후원은 바닥이었고, 생활 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처음엔 아내가 그냥 처남 있는 캐나다에 가봐야겠다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침구사 학교를 나오면 외국인도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소식에 학교에 등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학교를 휴학하고, 학교 선배들을 만나게 되고, 의사증이 있는 본인은 이미 자격이 됨을 알게 되었고, 비자를 학생비자에서 일반 방문비자로 바꾸었습니다.(후에 이게 문제가 됨)

 

그리고 집 앞에 있는 교회를 나갔는데, 각국의 이민자들을 품는 국제적 교회였습니다.

그 곳에서 아내를 알게 되었고, 중국인 사역자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와 하람이는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가 아파서 한국에 안식년을 신청했고, 

병원 다니며 치료 하던 중, 아내는 안식년을 캐나다에서 하며, 교회와 얘기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저는 하나님 뜻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하고, 기도했습니다.

 

비자를 전문 유학원에 맡기지 않으면 쉽게 거부되고, 한번 거부되면 기록에 남아서 두번째는 더 힘들다고 유학원에 맡겼습니다. 

 

(범죄자...)

그런데, 서류 준비하던 중. 범죄기록을 떼었는데, 예전 중국 선교할 때, 한번 귀국 후 15일 이내에 동사무소 예비군실에 전화 안했다고 범법자로 되어있었습니다. 유학원은 힘들다며 포기했습니다.

"잘 되었네 하나님 뜻이면 기적을 베풀어서라도 해주시겠지"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냥 제가 신청했습니다. 

 

(역시나 1차 거부, 그런데 2차 승인?)

처음엔 거부되었습니다. 이제 이민국에 거부 기록까지 추가 되었습니다. (사실 거부된 게 축복이었습니다) 

안식년 기간이 많이 남아서 그냥 같은 서류로 다시 신청해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승인이 떨어졌네요. 저는 기쁘기보다는 하나님 무슨 계획이시지? 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2019년 11월에 아이들 둘과 함께 캐나다로 입국했습니다.

아내는 교회 친구들과 공항에 나왔고, 방 구할 때까지 교회 친구 집에 임시로 거처를 정했습니다.

 

(아내 비자 문제)

제가 유학생으로 등록하면, 가족 모두 보험이 되고, 학비도 안들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입국하면서 아이들은 제 가족으로 등록되었지만 아내 비자가 문제였습니다.

12월에 변경신청을 했는데, 코로나 사태도 터졌고, 이민국에서 남편은 거부당한 기록이 있고, 아내는 "학생비자->여행비자->학생아내로 일할 수 있는 비자"로 변경하는 것을 의심하여서 9개월동안 수많은 보조 서류와 질문들을 하였습니다.

(강제 추방?)

이미 여행비자는 1월에 만기되었기 때문에, 비자가 거부되면 아내는 강제 추방되고, 코로나로인해 입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가족 모두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기도)

이미 공부도 시작하였고, 교회에서 찬양사역과 중국인 사역을 담당하고 있고, 아내도 비자만 되면 일할 수 있는 상태인데, 비자가 승인이 안나서, 지인과 교회들에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기적)

9개월만에 승인이 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없는 케이스라고, 신기하다고들 합니다.

 

 

사역

(교통사고)

아내가 교통사고가 나면서, 치료차 병원과 한의원에서 교정, 마사지, 재활운동 등을 받으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한의원 병원장이 아내의 치료 이력들을 자꾸 꼬치꼬치 묻길래 기분 나빴지만 알려주었습니다.

(기적)

후에 이 병원에 한의사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기서 만난 교정사 마사지사들이 침이 필요한 환자들을 소개시켜 줍니다.

 

(교회)

교회는 200여명 되는 다국적 맴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목사님이 협력하고 부목사님과 리더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정말로 신기한 것은 모든 목사님들이 선교사 출신입니다.

두 메인 캐나다인 목사님들은 아프리카 선교사였고, 부목사님이신 한인계 캐나다인 목사님은 인디언 선교를 하십니다

저와 아내는 음악사역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 수록 반주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교인들이 우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적)

교회에서 우리가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무료로 온라인 영어 강의도 해주십니다. 몇개월간 버스와 자전거만 타고 다녔는데, 오래되고 싸긴 하지만, 잘나가는 중고차도 지원해주었습니다.

어떻게 같지 사역할지도 잘 모르는 동양인 사역자를 교회에서 이뿌게 봐 주는 것 자체가 기적인것 같습니다.

 

 

질병

우크라이나에서 아들의 기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병원을 다녀도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우크라이나 병원을 신뢰할 수 없었기에 결국 안식년을 신청하고 철수를 계획하였습니다.

(실수->축복)

비행기표를 끊다고 결제가 계속 안되어서 포기하다가 다음날 새벽에 끊었습니다. 사이트에 들어가니까 출발지 목적지가 전날과 같기에, "아! 어제 검색한 기록이 남아있나보구나!"라고 생각하고 날짜를 확인 안하고 결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메일로 날라온 비행기표를 보니 날짜가 원하던 날짜보다 3주 이상 앞당겨져서 몇일 후에 바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취소 하려는데, 저가항공이라 전화도, 메일도 연락이 안되고, 하루가 지난 후에 연락이 온 바로는 거의 항공료만큼의 수수료를 내야 변경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빈손)

그냥 포기하고 주변선교사님들의 도움으로 열심히 짐싸고, 대부분의 모든 살림들은 선교사님들과 현지인들에게 주었고, 옷가지 몇가방만 들고 나왔습니다. 10년간의 우크라이나 생활이 단 몇일만에 정리되고,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 되니 허무했습니다.

(당뇨)

하기도 아내는 안식년을 캐나다에서 보내볼 것을 요청했고, 신체검사를 바로 했습니다.

당뇨 수치가 500? 당화혈색소 12.5? 무슨 얘긴지 전혀 몰랐는데,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 있는 위험도의 수치라고 설명해주고, 인슐린을 바로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절망) 

아들은 6개월째 기침, 아내는 갑상선 항진증, 나는 당뇨... 집도 차도 없고, 옷만 몇가지... 아이들은 이것도 해보고 싶다 저것도 해보고 싶다 하는데, 들어줄 수는 없고...

환경적으로는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캐나다 비자 신청도 거부되었습니다.  

(기적적 회복) 

하지만 교회를 다니며, 말씀으로 다시 무장했습니다.

모교회인 대전 예수마음교회, 수원 집 앞에있는 우리중앙교회, 장모님이 출석하며 섬기시는 서천중앙교회 등을 통해 위로와 회복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새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비자가 거부되고 재 신청하여 승인되는 시간동안 당뇨 치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1차 거부 된 것도 축복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은 찬 공기 알러지성 비염이였다는 진단이었고,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약을 복용하니 기침이 줄고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저는 기적적으로 몇개월만에 정상수치가 되어, 인슐린을 끊고 식이요법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의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기적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계속 기침했던 것도, 비행기표를 잘못 끊어서 일찍 나오게 된 것도, 비자가 1차 거부된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믿습니다. 영육간에 새로 무장하여 새로운 사역지로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주지

캐나다에 2019년 11월에 왔지만, 이제 집도 차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회 친구였던 일본인 친구가 일본에 잠시 한달간 다녀올 동안 1000불만 지불하고 묵으라고 해줬습니다.(당시 평균 방2개 반지하가 1200불 - 집 전체는 2500불) 시세에 비해 저렴할 가격이지만, 우리에겐 부담스러웠는데,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기에 그냥 그곳에 묵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달 다녀온다던 친구가 3개월 정도 있엇고, 귀국해서 조금 일하다가 다시 직장 문제고 일본에 간지 또 3개월이 되어갑니다.

이제 1년이 되어가네요. 얼떨결에 한달 묵을 예정이었던 집에서 1년 정도 묵게 되었고, 6개월 정도는 집 주인이 없는 상태로 우리 혼자 전체 집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지냈던 6개월간도 영어 연습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고, 서로의 불편함을 인내하면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캐나다 문화를 인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곧 주인이 다시 오면 이사를 나가야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방 시세가 조금 낮아졌습니다.

또 아내는 비자도 해결되고, 직장도 바로 구했고, 아직 환자가 아주 많지는 않아도 방세 내고 마트 장 볼  정도의 수입이 되어갑니다. 코로나19 상황을 볼 때에 예약 손님이 아주 많은 편입니다.

 

 

여기서의 1년간의 생활과 모든 환경을 하나 하나 퍼즐을 맞춰가면 모든 것이 주님의 계획하심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네요.

 

  

빈 손에서 모든것을 채우시고, 질병을 통해서도 사역하시고, 만남들을 통해 비자와 일과 사역들을 열어가시는 주님의 놀라우신 돌보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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